두 dispon
3년 만에 인양된 세워로 선치해서만 한 것입니다.
지난 2014년 바닷속에서 수습된 세월호 희생자들의 휴대조나 속에선
보신 것처럼 사고 초기 상황과 구조 실패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참사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치해서도 지금까지 수십 대의 휴대전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워낙 오래 침수돼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만약 모두 복구시킬 수만 있다면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희생자들의 휴대전화 복구는 이것 말고도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6일 세월호 선치조사위원회는 당시까지 선치해서 나온 디지털 기기의 복구 작업 경과를 발표했습니다.
85대 가운데 15대에 대해 복구를 시도해 두 대를 복구시켰다고 밝혔습니다.
단원고 2학년 2반 전수영 선생님과 김민지 학생의 것이었습니다.
휴대폰 메시지 분석 관련과 이 핸드폰의 사용자는 9시 30분 정도까지 휴대폰을 사용을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요.
그 이후에 휴대폰을 본실했는지 아니면 휴대폰을 이탈해서 다른 것으로 간 것으로 조정이 되었습니다.
비록 참사 원인과 직접 관련된 정보는 들어있지 않았지만 3년 동안 침수도 있던 휴대전화를 되살렸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복구된 데이터는 며칠 뒤 유가족들에게 직접 전달됐습니다.
통화와 문자 기록뿐 아니라 민지가 생전에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까지 모두 담겨있는 작은 USB 메모리.
아빠는 참아 열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딸 이렇게 보는 게 아팠어요. 지금 받아도 뭔지 볼지 모르겠어요.
휴지는 일주일 뒤 민지 아빠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 사이 세월호에서 수습된 민지의 여행 가방을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민지 아빠는 이번엔 용기를 내서 복구된 휴대전화 데이터들을 열어봤습니다.
참사 당일 아침 9시 47분, 마지막으로 기록된 부재중 전화. 바로 아빠의 전화였습니다.
저는 지금 그때 생각하면 호란데 와이프가 배 사고 났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 안 받고 혹시 다 놓은 거 아니냐고 다 놓은 것 같다.
전화 진짜 지금 생각하면 그것때도 전화했죠. 전화하고 안 받아도 안 받고 당연히 이렇게 생각될지는 못하고 다 후져될 줄 알았죠.
사진 폴더에는 다친 손가락 사진이 여러 장 남아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불과 2주 전 피구를 하다 다쳐 수술을 받고 이번에 있던 때 찍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좀 이 상태에서 간 거예요. 그래서 수술해서 피운이 되었잖아요. 얼마나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가슴이 너무 아픈 거예요.
손가락을 다 이렇게 다쳐서 어떻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그런 생각도 했죠. 하면 제가 배 기울을 했어요.
그토록 가고 싶었던 수학여행 길을 민지는 쉴 틈 없이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출발 전 여행 가방을 세워뒀던 교실에서 인천항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출항이 지연돼 대기하고 있던 대합실에서
그리고 드디어 배가 뜬 직후 객실에서 단짝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일 마지막 모습이 여기서 나온 거예요?
그렇죠. 아까 예진이랑 배 안에서 찍은 게 좀 더럽게 봤는데 그게 제일 마지막인 것 같아요.
그 밖에도 생전에 민지가 행복했던 순간들이 담겨진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
이걸 선물이라 해야 되는 건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똑같아요. 그 나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이 사진을 보고 언제 마음을 안도하면서 우리 딸 이렇게 이뻤었지 이렇게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미수습자 수색 작업이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는 목포 신항.
현재까지 9명의 미수습자 가운데 4명의 유해가 확인된 상태입니다.
침몰 해역에서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
선체에서는 조은화 허다윤 학생과 일반인 이영숙 씨의 유해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남은 5명의 미수습자들을 모두 찾을 때까지 이곳을 지키겠다는 은화 엄마와 다윤이 엄마.
은화 엄마가 갖고 있는 은화의 마지막 모습은 다른 친구의 복구된 휴대전화에 남아있던 사진입니다.
우리 이런 거 없으면은 같다. 사실은 같다. 일반인. 그런데 우리 은화 너무 행복해 보이죠. 배에서 그 날 저녁인지 저녁이 불 켜져 있는 거 보니까 이렇게 찍은 걸 소정이 엄마가 전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이랑이한테 친했던 아이예요. 가끔 반인지 아니면 다른 반인지 모르지만 은화가 이렇게 웃는 얼굴 되게 행복해 보이잖아요.
다윤이의 수학 여행길 사진은 아직 한 장도 없습니다.
혹시 이번에 복구된 민지의 휴대전화 속에 은화와 다윤이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사진들을 살펴보던 두 엄마의 눈끼리 동시에 멈춰섰습니다.
맞네. 은화가. 은화 맞죠. 은화 맞네.
민지가 찍은 인천항 대합실 사진 속에 은화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윤인 것 같은데. 예요? 예. 아 그래요? 네.
머리가 이렇게 길고. 가방도 다윤이 같아요.
이럴 거. 이럴 거.
작고 흐릿해 알아보기 힘든 여학생의 옆모습. 하지만 엄마는 한눈에 딸을 알아봤습니다.
이 가방 맞네. 맞아요. 다윤이 가방 맞아요.
이게.
다윤이 인생 맞아.
두 엄마는 아이들의 마지막 행복했던 모습을 어떻게든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이렇게 기대면서 어깨를 기대시는 친구가 있었구나라는 거.
그런 마음으로 다 있으면은가다 좀 위로가 되고 그 친구들이랑 같이 지금 잘 지내고 있나 라는 게 또 살아가는.
우리가 또 버튼이 힘이 되고. 그래서 엄마 아빠들한테.
정말 엄마 아빠들이 아프지 않아요. 이럴 수는 좋겠어.
그래서 보고 싶어요.
3년 넘게 침수됐던 휴대전화들을 과연 제대로 되살릴 수 있을까.
현재 선체 조사위원회는 수습된 휴대전화와 디지털 장비들의 복구를 민간 전문 업체에 맡겨둔 상태입니다.
기본적으로 국과수와 검찰, 경찰 등 정부 기관이 복구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유가족들이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도 초반에 아이들의 핸드폰이 해경솔에서 왔어요.
그러니까 포렌식도 안 하고 그냥 돌렁덜렁 해경이 들고 주문을 했다가 주는 거예요.
이게 여기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걸 처리하는 방식을 봤기 때문에 국가를 못 믿는 거죠.
선체 조사위원회는 올해 사업비 74억 원 가운데 디지털 포렌식의 24억 원을 산정하고 현재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 중입니다.
국과수나 검찰 쪽 사람들만 그래도 공무원이에요. 그러니까 공무원이 기술이 조금 나쁜 것을 따지는 게 아니고 공무원이라고 하는 것이 갖고 있는 신뢰성이 이 세월호 사건만큼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짜다 비싸다 돈이 많이 된다 적게 된다 보다는 그 목적 달성.
객관적인 기구에서 공정하게 어떤 결과가 나와야 국민들이 신뢰를 하게 되고 제3, 제4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 점에 좀 포커스를 맞추면 좋겠어요.
결국 세월호 희생자들의 휴대조나 복구는 1차적으로는 참사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핵심 과제이면서 그 이상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진상 규민도 진상 규명이지만 프로듀스 통해서 열어주는 그 애들을 흔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유가족들이 아주 치유해야 되는데 큰 역할을 다 쏘는 거고 애들의 소중한 흔적이고 추억이기 때문에 돈을 따주시는 건 좋지만.
이 아이의 핸드폰을 갖다 살렸을 때 다른 아이가 나오고 다른 아이의 핸드폰을 살렸을 때 우리 아이의 모습이 나오고 그리고 서르면서 엄마들이 누군가 누군가를 친한지 몰랐는데
아이들의 핸드폰을 갖다 보면서 아이들이랑 친했구나 이 아이랑 친했구나 그러면서 그 아이들의 추억을 갖다 다시 복명하게 되고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아픔도 있게 되고
그리고 서르면서 그 가정이 저도 치유해 가정이 한 가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핸드폰에 있던 행복했던 모습을 갖다 보고 싶어요.
휴대전화 복구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가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한 마지막 의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뉴스타파 김성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