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가지는 생태적인 습성에서부터 시작해서 식물에 있는 각종 기관들 예를 들어 암술, 슬슬, 지방, 시방 같은 식물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이제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들을 채집해서 말리는 작업 등을 하였습니다.
저는 영상, 영화를 쭉 해왔었고요.
이렇게 전시를 하게 된 거는 작년에 작은 기회가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소스위인 작가를 처음 만난 거는 한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연출팀으로 참여한 첫 번째 영화를 막 마치고 여행을 떠났었고요. 그게 파리였고 거기서 소스위인 작가는 유학생활이 이미 오랫동안 해온 상태에서 저를 만나게 됐죠.
영화를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사람과 그림을 좋아하는 영화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2년이 됐던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같이 하게 된 건 친구로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응원하고 때때로 의문을 가지면서 아이디어도 주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것 같아요.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이런 게 있는데 같이 해보자. 이런 게 자연스럽게 왔던 것 같고.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하는. 그래서 서로에게 할 이야기가 많은 사이였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서 그때 처음에 만났을 때는 되게 팔팔한 20대였다가 30대로 지나고 더 많이 저도 이제 저는 이제 주로 이미지를 그리는 페인터로서 정지된 화면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움직이는 그런 영상을 찍는 영화 감독에 대한 약간 동경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연구하는 그런 식물들을 좀 더 어떻게 하면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어볼까 나도 한번 그런 걸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되게 많았고요.
그래서 이제 운동력 감독하고 같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작년에 이제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일 것 저것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어 그러면 보도 블록에 있는 아이디어도 한번 찍어보고 싶다 이런 게 정말 계기로 해서
지금 이번에 한 프로젝트 식물의 관점에 대해서 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인간의 관점에서는 어떤 건 잡초고 어떤 건 정말 소중히 다뤄야 식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식물들 세상에서 다 똑같은 시점으로 본다면
똑같은 생명이지 않느냐.
누구는 잘 키워지고 누구는 뽑아야 하는 이런 거 말고 식물의 입장에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영상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의 시각을 더해서 하고자 해서 이런 협업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식물을 통해서 인간을 보고 싶은 한번 고민해보고 싶으면 제가 생각하는 인간 사회에 대해서
관찰해보고 싶은 욕구를 조금 해소해보는 자리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영역이라는 게 이번 작업하면서 더 느꼈지만 사실 구분하기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제가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지만 이게 그럼 내 작품이냐.
사실 그런 거에 대해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아이디어의 그냥 결과이지 사실 아이디어는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가 가끔 그냥 통화하면서 서로 작품 보면서
그냥 요즘 삶을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이야기들 아이디어들의 총앞으로 그게 영상으로 나온 거고
우리가 이번에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아이들을 수원에 있는 학교에서 같이 작업하는 것도 그냥 그런 아이디어들의 합이지
그거를 누구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영역을 나누기가 애매하고 사실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들 작품도 아이들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그게 그냥 우리 전시.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봤을 때 조금은 더 같이 있는 작업으로서 어떤 사회의 의미를 던질 수 있는 그런 결과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공동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협업을 통해서 한 가지 어떤 커다란 주제 식물의 관점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영상으로 또 찍어보고 아이들의 눈을 빌어서 그들의 손을 빌려서 새로운 이미지로도 만들어지고
또 이것이 모두 다 합쳐져서 이런 프로세스들이 전시장의 전시됨으로서 나타나는 효과들
이 모든 1년의 과정들이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고 같이 협업이라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고민은 사실 운동열 감독하고는 많은 얘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렇게 맞다운 부분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등장하는 게 가장 큰 변수였던 것 같아요.
저희가 이제 아이들한테 식물을 가서 찾아서 여러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줄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이
저희가 미리 해보지 않은 것이고 또 아이들을 미리 접해보거나 그런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가 나올지
처음부터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고 과연 초등학생들이 잘 저희가 의도한 대로 아니면
혹은 너무 멀리 가지 않는지 이런 것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아이들이었는데요 아이들과 같이 이번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발연한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조금 두려움이랄까? 두려움까지는 아니어도 이게 될까? 이런 느낌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우연성 때문에 사실 저는 이 작업의 흥미를 느낀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나 기타 제가 기존에 왔던 작업들은 사실 시나리오라고 하잖아요.
어떤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타이트하게 다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보면 배우한테는 감독이 이런 이런 이야기가 있으니
이런 대사를 해달라 이렇게 토시하나까지도 이야기해서 딱지 마치 화가가 오랜 고민과 오랜 부짓그때
하나의 작품 완성하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도.
그런 면에서는 완성작이 있기 전까지는 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어떤 자기의 생각한 이미지나 어떤 고민이나 이런 것들을 풀어내는 게
다만 그냥 어떤 캔버스나 어떤 그 안에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냐 아니면 요즘은 디지털이니까
상영관이나 어떤 집에서 혹은 스마트폰에서 보는 움직이는 어떤 조각들이냐.
이 차이지 결국은 다 어떤 틀을 벗어나는 게 되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이 작업의 특혁미를 느낀 건 아이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까부터 시작해서
두 시간이라는 수업 동안 사실 최대한 저희가 관여하지 않는 게 이 작업의 저는 의미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정신없이 어떤 한 연극을 막 준비를 했어요. 학위 같은 거죠. 연극을 정신없이 준비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갔을 때 뭔가 두 시간이라는 무대의 어떤 연극의 시간을 지나 버렸지만
무대에서의 기억은 없는 거. 뭔가 끝났어. 사람들이 박수를 쳤든 안 쳤든 중요하지 않고
일단은 막이 내려왔는데 우리끼리 그냥 끝났다. 이랬는데
잠깐만 뭐가 어떻게 지나갔지 이런 기억. 그런데 막 몸은 상기돼 있고 뭔가 머리는 좀 짓근짓근하고
그런 기억이에요. 지금 이게 저한테 어떤 작업으로서의 가치를 갖기에는 좀 이른 것 같고
소외를 얘기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고 다행인 거는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이 바로 각자 스케줄이 바쁘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에 따라 집으로 갔는데 전시하는 첫날 아이들을 만나서 아이들을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그날 아이들이랑 전시장에서 각자의 그림과 우리 영상과 우리 전시 전체를 같이 보면서
그때 이야기를 나누면 아 이 작업이 적어도 저한테는 이런 의미가 있었고
이 의미를 제가 다시 한 번 제안해서 곱씹어서 관객한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는 합니다.
그리고 꼭 그래야 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그냥 상기된 자리로 그냥 이렇게 열로 그냥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아요.
열이 식으면 그냥 다 이전과 똑같이 지는 것처럼.
어떤 식물은 되게 뭐 비싸기도 하고 어떤 식물은 그냥 막 풀밭해서 막 자라기도 하고
어떤 식물은 뭐 장물로써 혹은 화해로써 되게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어떤 식물은 잡초로써 우리가 제거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잖아요.
이러한 것 모두 다 인간의 관점에 의해서 나눈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어쩌면 인간은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 또한 그런 기준으로 나누고 있거든요.
누구는 되게 소중한 사람이고 누구는 되게 별로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어쨌든 이 지구라는 동그란 물체 안에서 인간과 식물과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그냥 누가 누구의 기준에 의해서 그들을 분류하고 가치가 있다 없다 이야기하는지 아직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식물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반대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오히려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근데 우리는 움직이는 동물 같이 그들을 뽑아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식물의 입장에서 작고 크건 혹은 구석에 있고 또는 바치에 있고 어느 위치에 있건
자신들도 다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조금 더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작업에서 식물의 식물을 사용을 했죠.
식물은 원치 않든 원하든 그런 것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그냥 식물을 이 작업의 도구로 제가 선택을 하고
소수민 작가가 선택을 하고 이용했고 이용당했죠.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게 참 제가 이 아이디어 이번 작업을 하면서 소수민 작가랑 이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제 스스로는 조금 갸우뚱하면서 이게 맞나 이렇게 되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이름을 불러주는 게 이번 작업에서는 핵심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름을 지어주는 거 아이들이 식물에게 가서
그거 자체가 굉장히 어떻게 보면 권위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식물을 그냥 잘하고 있는데 이름을 붙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이름을 붙여줬어.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이 써놓은 거에 보니까 내 거 이렇게 써놓은 친구들도 있고
근데 과연 우리가 하려는 주제가 뭐였을까?
그걸 그런 면에서 한 번 더 깊게 생각을 해봐야 되겠다.
이게 작업의 도구로 식물을 사용한다는 거 그리고 예술가는 작업의 도구가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예술가의 작업의 도구를 선택하면서 그 도구에 대해서 좀 더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는 배우나 어떤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 내가 존중을 하고 있은지 그걸 생각해봐야 될 것 같고
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또 다른 게 있겠지만 특히 저희는 이번에 생명체를 다뤘잖아요.
만약에 이게 동물을 우리가 가서 목걸이로 지나가는 쥐를 막 잡아서 거기서 목걸이 해서 이름을 붙여주고 이런 행위를 했다면
굉장히 다른 관점으로 시각으로 사람들이 봤을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동물은 일단 채울 때 반응이 올 것 같아요.
그런데 식물은 반응이라는 게 고작해서 고작. 혹시라도 아이들이 꽂다가 상처가 나면 상처라고 하는 표현도 되게 인간적이긴 하네요.
그럼 진물이 좀 나거나 거기서 안에서 수액이 좀 나오거나 이 정도인데 그걸로는 사실 어떤 인간적 관점으로 보면 별 게 아닌 거죠.
그래서 동물을 식물을 사용하면서 이 작업이 굉장히 더 꾸준히 나아가려면 작가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겠구나.
그리고 제가 무책임하게 들어왔지만 이거를 조금이나마 제 스스로 회복을 하려면 전시 과정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어떤 무언가는 뱉어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엄청난 거를 바라는 것보다는 단 한 순간이라도 어떤 시각을 가지는 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그 식물이 원치 않아서 이름표를 달아줬을 수도 있고 내가 원치 않는데 아이들이 나한테 물도 주고 관심을 받아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지만
정말 많은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는데 누구 하나는 어떤 지역에 의해서 어떤 위치에서 자라는 혹은 그 식물의 겉모양에 의해서 한 번도 종명받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뭐 그들이 원치 않는 수도 있지만 그런 거에 대해서 어떤 생명이 이러한 곳에도 있구나 하는 어떤 사람이 이러한 곳에도 살고 있구나 하는
그냥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생각 그걸로 좋은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잡초를 봤을 때 잡초가 너무 잘 자라잖아요.
그리고 그게 잘 자라는 이유가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 그게 잘하니까 일종의 나는 파란색으로 다 칠하고 싶은데 빨간색이 자꾸 커지니까 나는 빨간색을 칠한 적도 없는데
눈이 얼마나 보이겠어요. 그러니까 거슬리는 거죠.
근데 그 잡초가 거기에서 나타나게 된 거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우연이라는 거죠.
근데 제가 태어난 것도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굉장히 많은 우연들의 집합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세상과의 연결지점이 저는 이번 작업에서 있었던 것 같으니까 두 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이거 자체도 제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보도블록에 자라는 잡초들이나 저희 집 밭에 제가 원치한 짐한 잘했던 그 수많은 풀들
저는 토마토와 가지와 오이와 호박을 심었는데 오이와 가지와 호박이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태양을 보고 싶어 하는데 보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만나면서
과연 내가 의도한 것들의 의도한 것들이 내 삶이 얼마나 되는가 이 사회에 의도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가
어쩌면 제가 태어난 것도 제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닌 것처럼 그냥 우연의 집합들이 훨씬 큰데 우리가 굉장히 큰 착각을 하고 있지 않나
적어도 제가 많이 착각을 하고 있지 않나
전시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주변에 있는 식물들을 조금 더 자세히 봐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시선처럼
그래서 혹시 아까 윤동열 감독처럼 자기가 토마토를 키우고 있는데 옆에 자라는 식물인데 평상시에는 무의식적으로 잡초라고 생각해서 뽑았다면
그걸 안 뽑고 뽑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 그럼 얘는 뽑으면 더 좋은 건가 안 뽑는 게 좋은가 이런 생각을 하든지
무심결에 보도블록을 지나다니면서 바닥을 거의 보지 않잖아요 하늘도 보지 않듯이 사람들이 그랬을 때 바닥을 한 번이라도 보고
어 여기도 이런 초록색 아이가 있었네 라는 생각 그 정도까지만 해줘도 이번 전시에서는 되게 작가로서는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식물에 대해서 다양한 생태적 숲성이라든지 아니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영상도 좋고요 어떤 좀 더 채집도 좋고요 뭐 회화로 그리는 것도 좋고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식물이 가지는 특징들
사람들이 혹시나 잊어버리는 것들 늘 있지만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식물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을 또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한 고민은 계속 돼야 되니까
근데 거기에 대해서 인간을 고민할 때 우리가 식물이라는 예술의 도구로서 식물을 사용한다는 거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